국내서도 VR 접목 디지털 치료제 시험 돌입
[애틀러스리뷰] 규제기관의 승인을 받은 디지털 치료제는 업계의 높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실제로 그리 많이 등장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미 FDA 인허가를 받은 최초의 디지털 신약 ‘리셋(reSET)’이나 게임으로 아동의 ADHD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EVO’ 등이 존재하며,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피어 테라퓨틱스 ‘reSET’, 최초의 디지털 치료제로 주목
미국의 경우 알코올 및 약물 중독은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는 미국 내 18세 이상 인구의 12.7%가 알코올 중독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연간 8만 8천 명이 알코올과 관련한 이유로 사망한다고 발표했다.
이 상황에서 피어 테라퓨틱스(Pear Therapeutics)가 아편을 제외한 알코올, 코카인, 마리화나의 물질 사용 장애(substance use disorder, SUD) 치료를 보조할 용도로 개발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리셋(reSET)’은 2017년 9월 14일 FDA의 승인을 받아 주목받았다.
이 애플리케이션은 환자에게 알코올과 마약의 오남용 자제에 대한 보상과 욕구 관리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의사에게는 환자가 제공하는 물질 사용 정보를 제공해 원활한 처방 진행을 돕는다. 리셋은 치료를 목적으로 FDA 승인을 받은 최초의 디지털 애플리케이션인데, FDA는 “리셋은 디지털 기술이 질병 치료에 추가적인 도구가 될 수 있는 예”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임상시험 결과 리셋은 그 효능이 입증되었다. 10개 기관 507명의 마리화나, 코카인, 알코올 의존성 환자를 대상으로 12주간 진행된 임상시험 결과, 리셋을 사용한 환자 중 58.1%가 9~12주 차까지 절제 상태를 유지한 데 반해, 일반 치료를 받은 환자 중 29.8%만이 같은 기간에 절제 상태를 유지했다. 리셋이 인지행동 치료 방식을 사용하며, 임상시험에서 부작용이 없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편, 피어 테라퓨틱스는 2018년 3월 글로벌 제약업체 노바티스(Novartis)와 정신분열증,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디지털 치료제 개발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으며, 2020년 1월에는 가상현실(VR) 업체인 퍼스트핸드 테크놀로지(Firsthand Technology)의 통증 완화 치료 기술을 인수했다. 이는 디지털 치료제 플랫폼을 확장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라 볼 수 있다.
ADHA 치료 위해 게임을 접목시킨 알칼리 인터렉티브의 ‘EVO’
알칼리 인터렉티브랩이 개발한 ‘에보(EVO)’는 ‘소아주의력 결핍 과다 행동 장애(ADHD)’ 치료제로 현재 미국 FDA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알칼리 인터렉티브랩은 신약개발 스타트업인 퓨어 테크 헬스에서 분리된 회사로서, 퓨어 테크 헬스는 저분자화합물 알약과 함께 EVO를 신약 후보 물질로 올린 바 있다.
에보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샌프란시스코(UCSF)의 논문을 기반으로 개발되었는데, UCSF는 한 손으로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 화면 중간에 무작위로 튀어나오는 물체를 인식하는 방식으로 인지능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게임 ‘뉴로레이서’를 개발한 바 있다.
에보는 아직 인허가 과정에 있기에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개된 스크린샷을 보면 뉴로레이서처럼 캐릭터를 조종하는 동시에 다른 특정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임상시험 결과 이 게임은 그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4주 동안 주당 5일, 하루 25분씩 플레이를 한 20여 명이 주의력 향상 결과를 보였다. 특히 그중 7명은 효과가 매우 커 ADHD 범주에 들지 않게 됐으며, 이 상태가 최소 9개월 동안 유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츠카제약과 프로테우스 디지털 헬스의 ‘아빌리파이 마이사이트’
일본 ‘오츠카제약’과 ‘프로테우스 디지털 헬스(PDH)’가 공동 개발한 ‘아빌리파이 마이사이트 (Abilify MyCite)’는 오츠카 제약의 조현병, 조울증 치료제 ‘아빌리파이’와 PDH가 특수 제작한 ‘IEM(Ingestible Event Marker)’라는 센서가 내장된 디지털 알약이다. 이 알약은 세계 최초의 디지털 의약품으로 알약과 센서, 패치, 앱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2017년 11월 미국 FDA로부터 성인 조현병, 급성조증, 양극성 1형 우울 장애를 겪는 혼재형 발작 환자를 위한 치료제로 승인 받았다.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정신 질환 치료 알약인 아리피프라졸 중간에 IEM 센서가 내장되어 있는데 환자가 알약을 먹으면 배 속에서 녹으면서 센서가 노출된다. 센서가 액체와 닿으면 환자가 착용한 웨어러블 기기 ‘마이사이트 패치’에 약을 먹었다는 신호가 전송된다.
기기는 신호를 분석해 환자가 언제 약을 먹었는지 기록하며, 이 정보를 환자는 스마트폰 앱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환자 승인에 따라 간병인, 의료진은 포털을 통해 관련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사실 오츠카제약은 지난 2015년 9월 FDA에 승인을 신청했었다. 그러나 그 당시 FDA는 실제로 환자들이 복용했을 때 수반될 수 있는 위험성이 평가되지 않았고, 환자들이 효과적으로 사용할 입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신청을 반려했었다. 이에 오츠카제약은 추가 임상시험과 자료 보완 등을 거쳐 FDA 승인을 취득한 것이다.
또한, 알약에 내장된 센서를 담당하는 프로테우스 디지털 헬스(Proteus Digital Health)는 “아빌리파이 마이사이트는 안전한 웹 기반 대시보드로 의료 공급자에게 일정 기간의 약물 복용 패턴을 알려주며, 환자가 동의하면 정해진 의료진과 가족이 환자의 공유 데이터를 볼 수 있다”고 밝히면서“이를 통해 의사와 환자에게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뉴냅스의 ‘뉴냅 비전’…임상 시험 승인 받아
국내 업체 뉴냅스의 ‘뉴냅 비전(Nunap Vision)’은 뇌졸중 치료 후 시야장애를 앓는 환자들이 헤드 마운트 장치를 착용하고 VR 공간에서 시야 적응 훈련을 하도록 만들어진 소프트웨어이다. 장애에 따라 특정 위치에 자극을 주는 방식으로,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지각능력이 향상되는 ‘지각 학습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뉴냅스는 8년여에 걸쳐 개발을 진행했으며, 지난 2019년 7월 1일 확증 임상시험 계획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최종 승인 받았다.
환자들은 눈이나 시신경에는 문제가 없지만, 뇌 속 시각 중추가 망가져 사물을 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사분면 중 한 곳이 찌그러져 보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보다 시야가 절반 수준으로 좁아지기도 한다. 이에 뉴냅스의 대표인 강동화 교수는 “뉴냅 비전은 치료법이 없었던 전 세계 시야 장애 환자들을 위한 VR기기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대규모 임상시험으로 근거를 마련한 후에 해외시장에서 선도적 지위를 점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